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은 무엇일까요?
물론 이 세상의 안위를 위하여 자신의 육적인 축복을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믿는 믿음의 목적은 결국 영혼의 구원입니다.
성경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영생이라 하셨습니다.(요일 2 :25)
어떻게 해야 천국을 물려받을 수 있는지
어떤 자가 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유월절 논쟁
[눅 22:14~15]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예수님께서 영생을 약속한 새 언약 유월절의 진리가 오늘날 지켜지지 않고 있습니다.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그토록 간절히 지키기를 원하고 원하신 진리입니다.
이러한 유월절이 언제 어떻게 누구에 의해서 폐지가 되었는지 교회의 역사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1)유월절의 중요성
애굽에서 종노릇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의 권능으로 애굽에서 해방을 받아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를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하게 하시려고 유월절을 기념하여 지키라 했습니다(출 12장).
또한 예수님께서도 유월절의 떡과 포도주를 예수님의 살과 피라 약속하시고 죄 사함과 영생의 축복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마 26:17-19]
무교절의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유월절 잡수실 것을 우리가 어디서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가라사대 성안 아무에게 가서 이르되 선생님 말씀이 내 때가 가까왔으니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네 집에서 지키겠다 하시더라 하라 하신대
제자들이 예수의 시키신 대로 하여 유월절을 예비하였더라
[마 26:26~28]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죄 사함과 영생의 축복이 약속된 소중한 날이기에 예수님께서 친히 지키시고 기념하라 하셨으며(눅 22:19) 사도들도 예수님의 본을 받아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고전 5:7~8]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하자
[고전 11:23~26)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분명 예수님도 사도들도 유월절을 지키셨습니다.
그런데 유월절을 안 지키고 있다는 사실은
누군가에 의해 폐지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을 교회사를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2) 유월절 폐지의 역사
예수님 승천하시고 사도들이 복음 전하던 사도시대까지는 유월절이 지켜졌음을 성경을 통해 확인해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말기부터 불법의 비밀이 활동하기 시작하였고 사도들이 모두 세상을 떠난 후에는 불법이 더더욱 활개를 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불법이 등장하게 될 것을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살후 2:7]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사도 바울이 복음 전하던 시대에 이미 불법이 등장했다는 말입니다.
유월절 폐지의 역사를 살펴보면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동방교회에는 유월절을 가장 중요한 절기로서 닛산(1월) 14일 저녁에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지켰습니다.
그러나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에서는 유월절 주간에 오는 일요일에 성찬식을 거행했습니다.
이유는 일요일에 예수님께서 부활했다는 주장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유월절 성만찬은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는 날이고 부활절은 부활의 기쁨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의미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절대로 같은 날에 기념할 수 없는 절기입니다.
그런데도 당시 절대 권력을 행사하던 로마 정부의 세력을 등에 업은 로마교회는 예수님 부활한 일요일에 성만찬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점차 그들의 주장을 따르는 교회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동⦁서방 교회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고 급기야는 니케아 종교 회의를 통해 동방교회의 유월절은 완전히 폐지되고 말았습니다.
그 논쟁의 역사를 교회사를 통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①1차 논쟁(교회사 초대편 p121~122)
동방교회에서는 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키고 서방교회에서는 유월절 주간에 오는 일요일에 성만찬을 거행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여러 가지 혼동이 생기게 되었고 이런 불편을 막기 위해 A.D 155년 경 서머나의 감독 폴리갑과 로마교황 아니케터스는 이 문제를 토론하였으나 양편이 다 상대방을 설복 시킬 수가 없어서 서로 다르게 지키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②2차 논쟁(교회사 초대편 p122~123)
1차 유월절 논쟁 이후 로마제국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로마교회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교회가 늘어감에 따라 로마교황 빅터는 일요일에 성만찬을 행하는 도미닉 규칙을 채용하도록 전 교회에 강요하였습니다.
동⦁서방 각지에서 여러 회의가 열렸는데 아시아를 제외하고는 도미닉 규칙을 채용하게 되었습니다.
에베소 감독 폴리크라테스는 로마교황 빅터와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사도 요한과 빌립, 그리고 많은 순교자들이 복음에 따라 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켜왔음을 강조하며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p294~296) 로마교황 빅터의 조치에 반발하였습니다.
빅터는 동방교회들을 비정통으로 몰아 파문하려 하였으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취소했습니다.
③3차 논쟁(간추린 교회사 p64~65 , 세계기독교회서 p102)
1⦁2차에 걸친 유월절 논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서방 교회 간에 성만찬의 날짜에 대한 의견이 달랐습니다.
이에 로마교회가 콘스탄틴 황제의 힘을 빌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를 개최하였고 로마황제는 니케아 회의를 통해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일치된 결론을 요구하게 되었고 2개월간이나 지속된 회의에도 일치된 견해가 나오지 않자 결국은 황제가 개입을 하게 되어 1월 14일에 유월절은 폐지가 되고 그 주간 일요일에 성찬식을 하는 로마교회의 방식을 따르게 한 것입니다.
이때부터 1월 14일에 유월절 지키는 사람들은 이단으로 취급받게 되었고 결국 유월절 진리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소중히 여긴 유월절이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에서부터 변질되기 시작했고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완전히 폐지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교회 안에서는 유월절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고 서방교회에서 주장했던 부활절 성만찬 예식만을 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에서는 성만찬은 알아도 유월절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안상홍님께서 유월절을 회복해 주셨고 유월절의 중요성을 깨달아 지키게 해주셨습니다.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께서 회복하여 주신 유월절은 오직 하나님의 교회에서만 지키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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