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26일 토요일

하나님의교회 & 왜 슬피 울까?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의 뜻과 가르침을 따라서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믿습니다.
성경이 이를 증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며 자기들의 생각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성경과는 다른 사람의 지식과 고정관념, 편견 등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가로 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습니다
 
 
왜 슬피 울며 이를 갈까?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태복음 22:12~14)
 
 
이 비유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이방인들을 두고 하신 말씀이 결코 아니다.
그러면 누구를 두고 하신 말씀이겠는가.
원래 임금의 혼인잔치에 초대받았던 기득권층 사람들은 무자격자로 결국 실격처리됐다.
 이후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잔치에 청하여 오라는 임금의 엄중한 명령에 따라 신분, 성품, 예복 같은 것은 따지지 않고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모두 데려오니 혼인잔치에 하객이 가득하게 된다.
 
 
이 혼인잔치 자리가 어떤 자리던가?
한국의 청와대에도, 영국의 버킹검 궁전에도, 미국의 백악관에도 아무나 초대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천국은 더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천국 혼인잔치 하객으로 초대받은 사람들 중에 감히 예복을 입지 않은 문제아가 섞여있을 정도면 이것은 분명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하객들의 의식수준이 이런 상황이다 보니 신부의 존재와 등장시기를 미리 거론해 본들 관심 밖이고 시기상조다.
성경도 믿지 않고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신부가 있다 없다혹은 나도 신부고 너도 신부다, 우리 모두가 다 신부다라고 말장난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말이다.
 
 
결국 혼인잔치에 예복도 입지 않고 들어온 한 사람이 임금의 눈에 심히 거슬리게 되어서 그냥 강제추방 정도가 아니라 안타깝게도 수족을 결박당하고 무서운 처벌까지 받게 되니 바보처럼 아무 생각없이 영문도 모르고 남들따라 들어온 하객으로서는 얼마나 억울했으면 슬피 울면서 이를 갈기까지 했을까.
 
 
 
본문에서 바깥 어두운 곳에 내어 던져졌다는 것은 지옥에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옥의 고통이 오죽 심하면 수족이 잘리는 육신의 고통이 있더라도 지옥만큼은 가지 말라고 당부하였을까.
예복을 입지 않았던 그 하객은 차라리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 것을, 차라리 가룟 유다처럼 태어나지 말거나 제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스승을 배신하지도 않았을 것을 ···.
차라리 기성교단의 오만과 교만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온갖 불법과 비리에 중독되지는 않았을 텐데, 조금만 더 겸손했더라면 새 언약 안식일과 유월절을 지키는 사람들을 그렇게까지는 비방하거나 핍박하진 않았을 텐데, 차라리 주일예배만 강조하는 우리목사님과 등졌더라면 성경말씀대로 쉽게 돌아올 수 있었을 터인데 ···.
 
 
 
같은 제자로서 베드로와 유다의 차이점은 한 사람은 통곡하며 진정한 회개를 하고 수많은 사람까지도 회개시켜 구원의 길로 인도했고, 다른 한 사람은 후회만 하다가 결국 자살했다는 것이다.
사악했던 좌편강도와 회개했던 우편강도는 둘 다 같은 강도였지만 진실된 회개의 가치를 생각하게 한다.
이 모든 것이 어찌 지나간 옛이야기로만 치부할 것인가?
이것이 어찌 남의 일이고 강 건너 불구경일까? 이런 모든 일들이 내 발등의 불이 되지는 않을런지 자신을 돌아보면서 엘로힘 하나님의 은총을 입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설마 나는 아니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이 얼마나 무서운 생각인지를 모르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출처 : 패스티브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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