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언약 유월절 폐지 논쟁의 역사를 교회사를 통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①1차 논쟁(교회사 초대편 p121~122)
동방교회에서는 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키고 서방교회에서는 유월절 주간에 오는 일요일에 성만찬을 거행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여러 가지 혼동이 생기게 되었고 이런 불편을 막기 위해 A.D 155년 경 서머나의 감독 폴리갑과 로마교황 아니케터스는 이 문제를 토론하였으나 양편이 다 상대방을 설복 시킬 수가 없어서 서로 다르게 지키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②2차 논쟁(교회사 초대편 p122~123)
1차 유월절 논쟁 이후 로마제국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 로마교회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교회가 늘어감에 따라 로마교황 빅터는 일요일에 성만찬을 행하는 도미닉 규칙을 채용하도록 전 교회에 강요하였습니다.
동⦁서방 각지에서 여러 회의가 열렸는데 아시아를 제외하고는 도미닉 규칙을 채용하게 되었습니다.
에베소 감독 폴리크라테스는 로마교황 빅터와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사도 요한과 빌립, 그리고 많은 순교자들이 복음에 따라 1월 14일에 유월절을 지켜왔음을 강조하며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p294~296) 로마교황 빅터의 조치에 반발하였습니다.
빅터는 동방교회들을 비정통으로 몰아 파문하려 하였으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취소했습니다.
③3차 논쟁(간추린 교회사 p64~65 , 세계기독교회서 p102)
1⦁2차에 걸친 유월절 논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동⦁서방 교회 간에 성만찬의 날짜에 대한 의견이 달랐습니다.
이에 로마교회가 콘스탄틴 황제의 힘을 빌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를 개최하였고 로마황제는 니케아 회의를 통해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일치된 결론을 요구하게 되었고 2개월간이나 지속된 회의에도 일치된 견해가 나오지 않자 결국은 황제가 개입을 하게 되어 1월 14일에 유월절은 폐지가 되고 그 주간 일요일에 성찬식을 하는 로마교회의 방식을 따르게 한 것입니다.
이때부터 1월 14일에 유월절 지키는 사람들은 이단으로 취급받게 되었고 결국 유월절 진리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소중히 여긴 유월절이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교회에서부터 변질되기 시작했고 A.D.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완전히 폐지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교회 안에서는 유월절을 찾아볼 수가 없게 되었고
서방교회에서 주장했던
부활절 성만찬 예식만을 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에서는 성만찬은 알아도 유월절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안상홍님께서 유월절을 회복해 주셨고 유월절의 중요성을 깨달아 지키게 해주셨습니다.
재림 그리스도 안상홍님께서 회복하여 주신 유월절은 오직 하나님의 교회에서만 지키게 된 것입니다



새언약유월절은 하나님이 폐지한 것이 아니라
답글삭제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폐지한 것입니다!
새언약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 것은 대적자들을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